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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응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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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응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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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응사는 1994년 3월 1일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온누리에 전파하고자 하는 원력을 세워 창건되었습니다. 특히 현대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는 즈음에서 우리 불교계의 당면과제인 도시포교를 중점적으로 펴나가고 있습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원응사는 '도심속의 포교도량'으로 많은 시민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아도 시가지 인근에 위치해 언제든지 도심생활에 시달린 중생들이 마음자리 쉬어 갈수 있는 휴식과 깨달음의 절입니다. 매월 첫째 일요일에는 법화경 원전강의, 거사림법회가 있으며 셋째 일요일에는 청광 주지스님의 천수경 강의, 넷째 일요일에는 경전 사경법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다양한 연령과 사회계층에 맞게 군부대 법회, 어린이 법회, 중고생 법회, 청년부 법회, 찬불가 모임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피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라며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주지스님인사말 「용사가 전쟁에서 죽어야 돌아오듯 대장부 구도 길에 무엇에 미련두랴. 이 공부 처음부터 영원한 고행의 길 고행이 두려우면 어느 때 성불하리. 대장부 뜻을 두어 부처가 되려 하면 지혜의 날센 칼로 모든 인연 양단하고 맹세코 서원하길 고해에 머물면서 청정한 계율로써 모든 중생 제도하리. 」 이 말씀은 신라경문왕때 유가종의 시조인 대현스님의 게송으로 사의 호는 청구사문이며 저서는 화엄경고적기를 비롯하여 40여종이나 된다. 대현스님은 "장부가 구도의 길에 들어와 어느 곳에 미련두겠느냐, 오로지 청정한 수행과 계율으로써 승가의 본원인 하화중생에 생명을 걸겠다"는 단호한 뜻이나 어찌 불자가 이를 본받지 아니하겠는가라는 뜻으로 이 글을 지었다. 스님께서는 유가종의 개산조로 경주남산의 용장사에 주석하였는데 돌로 만든 미륵의 장육불이 주불이었던 바 대현스님이 그 주위를 돌면 불상도 그를 따라 얼굴을 돌었다고 전한다. 또 지혜와 언변이 전민하였고 판단이 분명하였으며 특히 법상종의 깊은 이치를 통달하여 후학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고 중국의 학자들도 그의 저서를 얻어 안목으로 삼았다. 서기 753년(경덕왕 12) 여름에 가뭄이 심하자 왕은 그를 내전으로 청하여 을 강행하여 감우를 빌게 하였는데 어느날 재식할 때 발우를 펴고 얼마동안 기다렸으나 정수를 더디게 올림으로 감리가 그 이유를 힐문하니 시자가 "궁정이 말라 멀리서 물을 길어오는 까닭에 이 같이 늦었다"고 하므로 대현이 이 말을 듣고 낮 강경시간에 향로를 받들고 선정에 들어가자 얼마 안있어 궁정의 우물이 칠장가량이나 치솟아 궁안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 그 우물을 금광정이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삼국사기에 전하는 역사적 대덕이었다. 스님은 덕행을 숨겼던 그로 승전에는 보이지 않으나 현장의 제자 원측 원측의 제자 도증, 조증의 제자가 곧 대현이라고 하며 저술면에 있어서도 원효 다음가는 제작자로 40여종에 달하나 거의 다 없어지고 ,성식유식론 고적기 등 다섯 종만이 현존하여 그의 가르침에 대한 애석함을 가지게 한다. 대현스님의 사상속에는 오로지 승가이면 승가로서 그 해야할 바를 수행하되 두려움이 없이 당당하게 나아가 기필코 목적을 이루는데 그 가르침의 진면목이 있으니 현실을 사는 승가는 물론 재가도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사명을 다하는데 삶의 기본뜻을 찾을 수가 있겠다. 출가자는 오직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이 진면목임을 강조하였는데 전쟁에 나간 용사가 물러 남이 없이 최선을 다하여 싸우다가 죽음으로써 귀향하는 극단적 수행을 비교하였으나 이시대에 출가한 사문은 마땅히 지혜의 칼로 삿된 인연을 끊고 맹세코 서원하길 이사바에 머물면서 청정한 계율을 바탕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표현인 것이다